[교양 인문]/나의 생각

나의 살던 고향은!

농부십장생 2007. 12. 19. 17:25

2007.12.19.오늘은 대선 투표일이다.아침식사후 아이들과 함께

투표장소인 퇴계동사무실에서 마음속으로 정해놓았던 후보에게 투표하였다.

라건대 우리식구가 찍은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의 경제(양극화해소,서민 삶의질 향상,실업난해소등)와

외교,안보,통일까지 우리나라의 장래를 책임질 그런 대통령이면 좋겠다.

앞으로 5년간,더 나아가 우리 다음세대가 행복해 질테니까! 

 

 오후에는 내가 태어나서 어린시절부터 초등학교 5학년 솥발리로 이사 올때까지 뛰어 놀았던 꿈속의고향 신틀암 마을을 다녀왔다.경춘고속도로가 공사중이고 고속도로 개통에 맞춰서 퇴계동에서 남산면 군자리 남춘천IC까지의 연결 도로를 곧게 펴고 확장 및 포장공사를 하고 있었다.마을앞 구간공사는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고 마지막으로 도로교통안전 표지판을 설치하고 있었다.그옆으로는 경춘고속철도 노반공사로 마을을 가로질러서 교각을 세우고 노반을 다지는 등 토목공사가 몇해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굿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속에서 놀던때가 그립습니다.동요 가사대로 양지바른마을 내고향인데 지금은 축사와비닐하우스 콘크리트로 포장된 마을안길,마을 뒷산까지 조성된 골프장까지 옛날의 추억이라곤 찾아보기가 쉽지않아 상당히 아쉽다.

 

아득히 멀어져가서 잘 보이지 않고 책표지가 하얗게 바래고 먼지가 뿌옇게 쌓여서 그냥 넘기기조차 힘이들 지경인 추억의 앨범을 한장씩 넘겨본다. 

그시절엔 자동차도 많지 않던 시절이라서 어쩌다 우마차나 다닐 정도로 비좁고 많이 구부러져 있었다.신남역까지 가려면 철로를 가로질러서여러번 건너야 할 정도로 건널목이 많았었다.마을앞 길 가운데에는 꽤나 높은 언덕길이 있어서 그곳에서 자전거 타기를 배우고 즐겨 타곤 하였다.

길가에는 내 키보다 엄청나게 큰 아카시아 나무들이 철길사이로 숲을 이루고 있었고 군데 군데 웅덩이도 파여 있고 쑥이랑 질경이랑 클로버랑 시강(겅)잎들이 무성하게 자라났었지. 바람이라도 불어올때면 아카시아 향기는 꿀맛같이 시원하고 아주 달콤하여 꽃잎을 따먹던 어린시절의 고향을 대표하는 향수가되어버렸다.내가 살던집은 주인이 여러번 바뀌었고 지금은 비어 있지만 지붕이 이영에서 기와로 바뀌었을뿐 옛모습을 어렵게 나마 찾을수가 있었다.  

 

우리집과 종일이 형네는 신남초교를 다니고 인석이 형과 다른집은 금병초교를 다녔다. 한마을이라야 열집이 모여 살았던 작은 한반이었다.영옥이랑 금자는 금병학교를 다녔는데 이사온후로는 못만났으니어릴때의 모습만이 기억속에 아련히 남아 있을뿐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금쯤이면 논에 물을 가둬놓고 얼음판을 만들었었지.그때는 왜 그렇게 추웠었는지 겨울만 되면 손등이 터지고 잎술엔 피가나고...두발썰매,외발썰매,팽이치기,비석치기,딱지치기,구슬치기,자치기,호무라,땅따먹기,연날리기등 우리들의 겨울방학을 보내면서 즐겨하였던 놀이들이다.얼음이 깨져서 발이라도 빠지면 양말이 젖어서 모닥불을 피워서 말려야 했던것이었다.

그냥 젖은채로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께 꾸중을 들을까봐 겁이 났었다.  

 

그때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서 TV랑 냉장고등 가전제품은 한가지도 없었다. 있다면 어디서 구해오셨는지 국산라디오가 하나 있었을뿐이다.난방은 온돌로 산에서 땔 나무를 베어다 아궁이에 불을 피워서 때곤 하였다.취사도 물론 아궁이에 나무를 때서 하였다.

덕만리고개까지 우마차에 타고 아버지를 따라가서 땔나무를 해오던 일,여름철 비가내린날에는 뒷동산에 올라가 참나무버섯등을 따왔는데 어머니께서 해주신 그버섯볶음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지금도 그생각만 하면 입에선 군침이 돈다.가방대신 보자기에 책을 싸가지고 다녔고,석유를 넣어서 불을켜던 등잔이나 양초를 주로 사용하였다.잿간(뒷간)에서는 볏집이나 헌 신문지를 사용하였고 양치질은 왕소금을 잘게 빻아서 사용하였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개울가에는 커다란 가래나무가 두그루 있고 그밑에는 아주 맑고 깨끗한 샘물이 있었는데 우리마을의 식수원이었다.지금의 상수도나 그전에 사용하던 지하수용 펌프우물도 없었던 그이전이니까 얼마나 오래된 옛날

이야기인가! 무더운 여름날 저녁이면 그곳에서 모여서 등목을 하곤 하였다.

등목을 하고나서 마당에 멍석과 맷방석을 깔아놓고 잡초를 뜯어다 모기불을

피워놓으면 어머니께서는 고구마범벅에 방금 무쇠솥에서 꺼낸 따끈따끈한 찰옥수수를 내오신다.맛있는 범벅과 옥수수로 저녁을 먹으면서 멀리 지나가는 기차의 불빛으로 집담장에 그려지는 활동사진을 보고 있으면 까아만 하늘의 오작교에서 만난 견우과직녀가 서로의 사랑을 속삭이면서 여름밤은 깊어만간다.  

 

오학년이 되면서 아버지가 계신 지금의 본가로 이사를 하였는데 한참후에 강원도에서 지정한 전통가옥으로 먼저살던 초가집에 비하면 궁궐이나  다름없이 넓고 큰 기와집이다.이사를 온후에 집앞의 논밭이 거의다 우리것이었으니 알부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남 부럽지 않게 학창시절을 보냈다.돌이켜 생각하건데 쌀밥에 이면수어,소고기를 넣은 미역국,바삭바삭 구워놓은 김과 두부찌게등은 자주 밥상에 올라왔다.지금도 생일날이면 어머니께서 절구에 찧어서 만들어 주시던 그 인절미가 그리워지곤 합니다.그때는 대진운수에서 마이크로버스라는 합승이 우리마을까지 아침저녁의 통학시간에만 한번씩 운행하였다.그렇지만 오십분씩이나 걸리는 학교까지 걸어다녀서인지 지금도 걷기에는 자신이 있다.군대갈무렵에 신작로를 만들고 시내버스가 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러니까 강산이 두 세번은 바뀐것같다.  

 

 

 

 

 

 

남춘천역 조감도 

 김유정역(신남) 조감도

 강촌역(산촌) 조감도

 

 
  

'[교양 인문] > 나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근하신년(謹賀新年)  (0) 2007.12.27
디지털 세상 한해를 보내면서  (0) 2007.12.22
살아온길  (0) 2007.12.01
안개낀집앞도로  (0) 2007.12.01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0) 2007.09.29